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키타하라 리에/NGT48 활동 (문단 편집) === 2015년 ~ 2016년 === * 2015년 3월 26일, AKB48의 단독 봄 콘서트 'ジキソー未だ修行中!'에서 4차 팀셔플이 있었고, 올해 새로 발족하는 [[NGT48]]의 캡틴으로 완전 이적하는 것이 발표되었다. 본인이 선택한 것으로 보이기는 하고, 일부에서는 마지막 푸시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도 위안인 것이 [[사시하라 리노|이적을 통해서]] [[오오바 미나|커리어를 되돌린 숱한]] [[우메다 아야카|사례가 있으며]], 혼자 가는 것도 아니고 절친인 [[카시와기 유키]]와 가는 점이 다행인 듯. 후임 팀K 부캡틴은 [[시마다 하루카]]가 되었다. * 2015년 6월 6일, [[AKB48/총선거/7회|제7회 총선거]]에서 한 번 선발에서 떨어져 언더걸스 이하로 떨어진 멤버는 선발로 다시 올라올 수 없다는 징크스를 깨고 [[와타나베 미유키]]와 함께 총선거 선발에 복귀했다. 3년 만의 복귀로 자신의 과거 최고기록인 13위를 뛰어 넘은 11위를 기록, 과거 미디어 선발이던 12위를 넘지 못하던 한을 이제서야 풀었다. "니가타로 가는데 빈 손으로 보낼 수 없다.선발 소감 준비하고 있어라"고 공언하며, [[NGT48]]라는 새로운 그룹으로 이적하는 그녀에게 힘을 보태주려는 팬의 순정 노력이 엿보였다. 11위에 이름이 불리자 크게 웃더니 절친인 [[카시와기 유키]]와의 하이파이브를 시작으로 절친들과 포옹을 하고 가장 밝게 등장하여, "니가타의 여자"라는 인상적인 말과 함께 긍정적인 스피치를 남겼다. 마지막엔 CM으로 스피치를 잘라 먹던 후지TV까지 디스하며 큰 폭소를 남기기까지 하며 과거 아키모토 야스시가 755에서 '네거티브를 버리면 키타하라 리에는 아직 희망이 있다."라고 하더니, 과거 네거티브하기로 한 성격을 완전히 날려버린 듯 긍정으로 가득찬 모습을 보여주었다. * 키타리에가 긍정에 가득찬 소감을 남기는 것과 상반되게, 2년만에 선발로 돌아왔다라고 말하는 키타리에가 환성을 질렀을 때, 하이파이브를 했던 카시와기 유키를 비롯해서, [[미야자와 사에]], [[요코야마 유이]], [[타카하시 미나미]], [[사시하라 리노]] 등 황금기 선발을 같이 했던 멤버들이 연신 눈물을 닦아 내는 모습이 계속 카메라에 잡혀, 그 동안에 키타리에가 겪어야 했던 시간들을 대신 짐작할 수 있었다. [[NGT48]]에 겸임하는 카시와기 유키 또한 선발을 달성했기에, 2015년 참가한 [[NGT48]] 멤버 전원 선발 달성이라는 기록 또한 세우게 되었다. 물론 이 기록은 사실 무의미한 것이, 총선거 성적을 받은 때에는 AKB48 멤버로서의 성과를 받은 거지, NGT48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때 NGT48은 아직 생기지조차 않았으므로. * 총선 이후에는 NGT48 오디션 심사위원으로 카시와기 유키와 함께 참가하는 모습이 미디어에 방송 되는 듯, NGT48으로 이적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완전히 된 듯하다. 한 번 하락세를 타는 중견이 다시 주목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여겨졌지만, 4회 연속 선발이라는 워낙에 탄탄한 지지층이 있었고, 네거티브함을 극복한 듯한 키타하라 리에 본인 자신의 노력과, 오오타 프로덕션이라는 소속사까지 뒤에 버티고 있어 전화위복의 기회를 마련할 수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 2015년 7월 22일 심야에 TBS에서 방송된, 「AKB裏ストーリー」에서는 키타하라 리에의 AKB에서의 여정을 주제로 40분 동안 방송이 진행되었다. 키타하라 리에의 가족, 학창시절, AKB 가입 부터 시작해서 팀 A 승격, SKE48 겸임, 선발 탈락, 니가타 이적, 선발 복귀까지 다사다난했던 여정을 총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 방송에서는 다시 한 번 키타하라의 인맥을 확인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5기생, 지방조, 태양회, 타카하시 미나미, 타카죠 아키 등이 총출동 해 그녀의 삶에 대해서 증언했다. ~~레나횽과의 부둥부둥짤까지 보너스~~ * 2015년 10월 11일 부산 아시아송페스티벌 참가를 위해 한국에 입국했다. [[카시와기 유키]]와 함께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하여 김해공항으로 도착했다. 아시아송 페스티벌은 두번째 참가. * 총선 선발에 든 이후 AKB48 베스트 앨범 선발멤버로 뽑히고, 개인 일도 차츰 늘어나는 듯 자리를 잡아가는 듯한 모습이다. 총선 및 NGT48 홍보 등으로 [[마츠이 레나]], [[카와에이 리나]]의 졸업 이후 빈 AKB48 선발 2자리 중 1자리를 채울 멤버로 유력시되고 있다. 예상대로 11월 18일에 발매되는 베스트 앨범인 [[0と1の間]] 과, 타카하시 미나미의 졸업 싱글인 [[唇にBe My Baby]]에서 모두 선발로 발탁되었다. 이후로 AKB의 모든 싱글에 현재까지 쭉 선발되고 있다. * 2016년 1월 10일, [[NGT48]]의 쇼니치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첫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보기 위한 경쟁률이 무려 70.5대 1에 달했다. 이게 대단한 게 [[니가타]]는 도쿄나 오사카, 나고야 등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작은 도시다. 시내 인구가 50만 정도고, 현 전체를 따져도 250만 정도의 작은 규모인데 이런 열렬한 반응은 [[NGT48]]의 앞날이 매우 희망적이라는 걸 의미한다.[* 그러나 이건 그저 한순간에 불과하다는 것이 [[NGT48]] 문서에도 잘 드러나있다. USJ의 티켓이 전혀 팔리지 않아 멤버가 서러워서 울고 있었다는 전설, 단독으로 콘서트를 개최해도 팬이 없기 때문에 다른 그룹의 콘서트에 꼽사리로 껴서 나와야 했던 전설 등을 남겼으며, 이후 2017년 중반이 넘어서까지 니가타에서의 인기가 오르지 않는 상황. 그나마도 [[오기노 유카]] 총선거 조작 의혹 때문에, 그룹 이미지가 더 나빠지기에 이르렀다.] * 공연 후, 무대에 섰던 멤버 16명으로 정식 팀 NⅢ가 결성되었고 키타리에는 NⅢ의 캡틴이 되었다. 물론 [[NGT48]] 전체의 캡틴 역할도 계속 수행할 예정이다. * 2016년 2월 27일 [[쓰르라미 울 적에]] 드라마판에서 [[타카노 미요]] 역을 맡는 것이 발표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